함께 떠나는 역사탐방 시리즈 #1

이름 : 김종웅
등록일 :
2020-06-19 09:22:26
|
조회 :
14,534

 

 

▣ 함께 떠나는 역사 탐방 시리즈 - 첫 번째
   - 수원 화성 -

 

 

 

 

“모든 일에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다만 내가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그것을 걱정하라.”
-<정조의 문집 '홍제전서' 175권 중>-

 

 


1762년 임오년 5월.
영조에 의해 뒤주로 추정되는 물건에 갇히고, 그로부터 9일 후,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살려 달라 외쳤던, 당시 11살의 세손(훗날 세자) 이산.
이후 조선의 21대 왕이었던 영조가 승하하면서 25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입니다.

 

 

 

정조가 즉위하던 18세기 조선.
모든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며 조선을 쥐락펴락 했던 노론 일파.
붕당정치는 변질되어 서로 견제하며 발전적인 공론을 형성하지 못하였고,
임진왜란 때 불탄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던 조선의 정궁 경복궁.
그나마 영조의 집권으로 왕권이 강화되어 탕평정치의 효과가 일시적으로 보여 지고 있었으나
이는 일시적이었을 뿐, 노론의 전횡은 왕이라 할지라도 어찌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정조는, 결단을 내립니다.

 

“신도시 건설”

 

그리고 신도시가 계획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면 수도를 신도시로 천도.
(천도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확인된 바가 없기에 추측성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그렇게 건설한 신도시.

 

 

“수원 화성” 

 

  


 [출처 : 수원시청 페이스북]

 

 


우리가 “경기도 수원”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바로 수원 화성과 S전자입니다.

수원은  인구 100만이 넘는 큰 도시이자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예요.

개인적으로는 5살 때부터 10살 때까지 저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도시이기 때문에 애정을 더욱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수원역 광장에서 바라보았던 시계탑과 팔달문을 중심으로 차량이 빙글 빙글 돌아가는 구조의 도로.

그리고 소풍 가서 뛰어놀던 화성의 언덕들.
저의 아버지 어머님께서 수원역 앞 시계탑에서 자주 만나서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셨답니다. 이건 티엠아이!!


 

 


 

무튼!! 이제 진짜 화성으로 가볼게요 :)
왕이 된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존하고,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고종 때 율릉으로 개칭)으로 했어요. 그런 뒤, 화성을 건설하고 그 안에 자신이 행차하면서 머물 수 있는, 그리고 훗날 왕위를 내려놓고 상왕이 되어 기거할 수 있는 행궁을 만들게 됩니다.

화성의 건축에 대해서는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이 전해오기 때문인데, 여기에 거중기에 대한 기록도 나오게 됩니다.

화성은 기존의 우리나라 성과는 달리 평지에 건축하는 성과 산성의 기능을 조화롭게 만든 성으로, 독특한 모습이 보입니다. 

성곽의 모습을 보면 아랫부분에는 큰 돌들을 쌓았는데, 그 돌의 모습이 네모반듯하지 않고 모두 크기나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벽돌에 석회를 발라 쌓았는데, 이는 적의 포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방안으로, 포탄을 맞았을 때 성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벽 돌로 쌓은 성곽의 아랫부분과 벽돌로 쌓은 성곽의 윗부분을 나누는 경계부분에 쌓은 '미석'을 통해 눈과 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끔 했습니다.

수원 화성의 성곽을 잘 보면 많은 구멍들을 볼 수 있죠. 이 구멍을 통해 화포 및 총과 활을 쏘거나 적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했고, 적이 성문을 뚫기 위해 화공을 할 것을 대비하여 오성지를 통해 불을 끌 수 있는 소화전까지 갖췄습니다.

 



 

 

군사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성으로, 성문을 둥글게 에워싼 옹성을 통해 적이 성문으로 들어오게 되면 사방에서 포위하여 공격을 할 수 있었고, 일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하게 쌓은 성벽과 성문 양쪽의 적대에서도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로 쌓았습니다.

 

 

2년 9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완성한 수원 화성은 둘레 5.7km, 면적 1.2㎡, 20만 덩이의 석재, 53만장의 기와, 69만장의 벽돌, 1845명의 장인이 참여한 엄청난 규모의 신도시 프로젝트였습니다.

정조는 수원의 백성들을 성 안으로 이주시키면서 수로를 확충하는 한편 국가에서 운영하는 둔전을 설치하여 농사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진휼행사를 개최하였고, 수도 한양의 부자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꿔주면서 수원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한 팔부자거리도 조성했습니다.

거기에 성 안에 수로를 정비하여 물의 흐름까지 계획하고 배수로까지 정비했던 도시였습니다.

또 있어요! 도성 내에 시전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는 누구나 상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한국사 수업 시간에 “신해통공”이라는 말로 배웠죠.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정책.

 

 

 

후손된 입장에서는 간절히 이루어지길 바라던 정조의 꿈은.
1800년.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세도정치의 시기로, 그리고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수원 화성은 이후,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상당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정부의 노력으로 복원이 꾸준히 이루어졌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 특징을 고루 갖춘 근대 군대 건축물의 뛰어난 모범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성립할 수 없지만,
만약, 정조가 갑작스런 죽음으로 승하하지 않고, 제 명대로 살면서 꿈을 이루었다면,
그랬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국가 주도의 농본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백성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누구나 자유롭게 상공업을 할 수 있고, 신분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고,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정치적 안정을 꾀했던 정조의 조선.

생각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즐거운 상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조의 못다 이룬 꿈이 담긴 수원 화성.
이제는 우리가 그 꿈을 이루어가며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세계적인 문화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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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웅 선생님

  • ☆ 긍정의 힘!☆
  • ☆ 나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 * 현) 메가스터디 사회탐구 한국사/역사 강사
  • * 현) 메가스터디 러셀 강남. 분당, 평촌, 영통, 부천, 센텀 출강
  • * 전) 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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